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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하소설] 범의 귀 (1)
보낸이:  
코마네치 (lensman)             2013-12-07 00:51:25      조회:1066
[대하소설] 범의 귀 (1)

소맥素麥은 예濊국 동이東暆현의 술장수였다. 당시의 술은 오늘날의 장과 같이 집집마다 곡아와 누룩을 써서 담가 먹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소맥은 일반 곡주 뿐 아니라 산딸기나 오디와 같은 값싸고 흔한 열매로도 곧잘 향기롭고 달디단 술을 빚어서 사람들에게 곡식과 은을 받고 팔아 살림을 꾸렸다. 또한 양이나 산돼지의 고기로 맥적貊炙을 맛좋게 구워내어 안주로 팔기도 하였다.

소맥의 집에 왕왕 찾아오던 마을 노인 갈마葛麻는 본래 활弓을 만드는 자로, 슬기롭기로 이름이 나서 중늙은이였을 당시 마을의 삼로三老를 지내기도 하였다. 또한 갈 노인은 활을 만드는 솜씨를 그대로 이용해 일종의 현악기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그 크기와 모양은 북방의 호인胡人들의 것과 비슷한 데가 있었다. 삼로 자리에서 물러난 뒤로 갈 노인은 꼭 사흘에 한 번씩 소맥의 집에 그 현악기를 품에 안고 나타나 평상에 앉아 주객들과 한참이나 수다를 떨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그 악기를 켜고 뜯으며 흥겨운 곡조를 한 가락 뽑고서는 과일술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킨 뒤 껄껄 웃으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는 하는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술값을 치른 적은 없었으나 갈노인이 워낙 마을에서 존경받는 사람이었고 또한 심지어 그 음악을 듣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으므로 소맥은 이를 고깝게 여기지 않았다.

하루는 소맥의 아들 소모素牟가 마당 가운데에 앉아 나뭇가지를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주객 중 누군가 자세히 보니 알록알록한 어미삵이 땅바닥에 엎드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미를 잃고 홀아비 밑에서 자란 탓에 동물들이 새끼를 거느린 광경을 그냥 못 보고 지나치는 것이 자못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때 갈 노인이 소맥에게 물었다.

- 그러고 보니 자네 아들도 이제 슬슬 글 공부를 시작할 나이가 되지 않았는가?
- 술장수가 글을 읽어 이로운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저 역시 어려서부터 글을 배웠지만 정작 먹고 살아가는 데에는 그저 간단한 셈이나 조금 할 줄 알면 되니 뒤돌아보면 헛고생 했다는 생각 뿐입니다.
- 이 사람아, 정신 차리게. 자네 아들도 술장수를 만들 생각인가?

술장수의 아들이 술장수가 되는 게 뭐가 어떻단 말인가? 하고 소맥은 생각했다. 자신이 젊었을 때 삼로를 지냈다 하여 평범한 하호인 자신을 얕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갈노인은 소맥이 은연중 비치는 불편한 기색에도 아랑곳 않고 말했다.

- 아이가 땅에 그려놓은 그림을 보니 여간 총명한 아이가 아닌 듯하네마는, 나중에 커서 읍군邑君이 될지 현후縣候가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자네가 가르치기 싫다면 나라도 붙잡고 글을 가르치고 싶을 정도네. 한 살이라도 어릴 때에 글을 가르쳐 둔다면 훗날 큰 도움이 될 날이 올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필시 후회하는 날이 올 걸세. 정녕 내 말 뜻을 모른단 말인가?

그러나 소맥은 그 말을 곧이 듣지 않고 다만 노인이 술에 취하여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였다. 무엇보다 소맥은 술을 빚는 일을 무척 즐겨하였고 오래 전부터 그 일을 아들에게 물려주겠다고 결심한 터였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으니, 당시 예인濊人들은 낙랑군의 한족 관서에서 봉하는 관직에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애써 노력하여 높은 관직에 오른다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는 있겠으나 사는 모양새는 그렇지 아니한 경우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하물며 일반 하호들은 풍습과 말이 사뭇 다른 한족들을 대하는 일을 까다롭게 여겨 오히려 기피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 소맥은 아들 소모를 불러 물었다.

- 내 듣기로 네가 어미 삵과 그 새끼들이 젖먹는 모양을 마당에 그리고 있었다 한다. 어찌하여 그런 그림을 그렸느냐? 죽은 네 어미가 그리도 보고 싶었더냐?

이에 소모가 답하였다.

- 소자 비록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지만, 소자를 낳아주신 제 어머니의 은혜를 잠시도 잊은 적 없사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모가 있게 마련이요, 그 부모에게도 또 부모가 있으며, 그 부모의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니, 이는 한 사람이 가진 조상의 수가 그 윗대로 갈수록 두 배가 되니 곧 수없이 많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하온데 만일 그것이 사실이면 아주 머나먼 옛날에는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진대 땅덩어리가 좁아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필시 그 수많은 조상들 중의 상당수는 서로 같은 사람이었어야만 이치에 맞는 것입니다. 우리 예濊 사람들은 예로부터 같은 성씨끼리 혼인을 하지 않는다고 하나, 그렇다고 하여도 그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반드시 같은 뿌리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그 뿌리가 갈라지는 것에 멀고 가까움이 있을 따름이니, 멀리 떨어진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김새가 서로 다름은 그들이 보다 먼 조상으로부터 갈라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생각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짐승도 인간과 한 어미의 새끼였을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짐승이 인간과 모습이 완전히 다르지 아니한 것은 먼 옛날에 같은 조상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온데 버러지 중에는 간혹 아비 없이 새끼를 낳는 것이 있기는 하나 산것 중에 어미가 없는 것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과 들짐승, 도마뱀과 물고기, 풀과 나무, 벌레와 술 빚는 누룩까지도, 이 세상 만물은 모두 하나의 어머니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사옵니다.

이를 듣고 소맥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기특히 여겨 그 날부터 매일 소모에게 글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주기로 하였다. 며칠 후 갈노인이 술을 마시러 왔을 때, 어찌하여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라 하였는지를 물었다. 이에 갈노인이 대답하되

- 내가 보기에는 자네 아들의 그림이 마치 곰 사슴 말 개 등등 온갖 짐승의 새끼가 커다란 호랑이의 젖을 빠는 것으로 보였다네. 그것이 아무래도 범상치 않아 자네 아들이 총명하니 글공부를 시키라 말한 것이네.

라 하였다.

http://sodo.byus.net/bbs/4 

[답변1]
보낸이: 不亂徒 (탈퇴) 

답변일시 : 2014-08-28 11:44:52  x

내가 댓글달았다!
[답변2]
보낸이: 폭꿀 (탈퇴) 

답변일시 : 2014-11-18 14:13:55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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