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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하소설] 범의 귀 (3)
보낸이:  
코마네치 (lensman)             2013-12-07 00:53:04      조회:424
[대하소설] 범의 귀 (3)

때는 시월 하고도 초사흗날로 나뭇잎에 붉은색이 물드는 계절이었다. 오곡백과가 풍성하게 무르익어 추수를 기다리고 특히 산열매 중에는 돌배가 찬서리를 맞은 뒤에 한창 단맛이 드는 철이었다. 마을의 서쪽 산속 깊은 곳에는 소맥이 남몰래 보아둔 돌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그 열매는 아이의 주먹만하고 껍질이 얇으며 떫은 맛이 적어 술을 담기에도 날것으로 먹기에도 아주 제격이였다. 해마다 이맘때 쯤이면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그 나무를 홀로 찾아가서는 광주리 가득 돌배 열매를 따오는 것이 소맥의 삶에는 큰 즐거움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소맥은 커다란 광주리를 들고 산에 올라갔다. 그런데 돌배나무 밑에 웬 어린 조랑말 한 마리가 떨어진 돌배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필시 이웃 마을에서 길을 잃고 넘어온 것이었다. 그 몸집은 작아서 마치 개와 같고 털빛은 밝은 누런 빛이었으며 갈기에는 연한 붉은 빛이 감돌았다. 소맥은 어린 말이 돌배를 맛있게 먹는 모습이 제법 귀엽고 복스러움이 있어 한참동안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얼마 후 화려華麗현 사람들 몇몇이 산등성이 위로 나타났다. 말의 발자국을 보고 쫓아온 것이었다. 그 중 제일 늙은 사람이 말했다.

- 아이고 죄송합니다요. 이 죽일 망아지놈이 제멋대로 도망을 쳐서 그만 동이東暆국 땅까지 넘어오고 말았습니다요.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당치 않습니다. 그저 망아지가 땅에 굴러다니는 돌배 몇 알 먹은 것이 전부입니다.
- 아이고,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그런가, 하고 소맥은 생각했다. 늙은 사람이 회초리로 어린 말의 등을 연신 내리치며 말했다.

- 이 죽일 놈! 이 죽일 놈! 오늘 네가 한 번 죽어봐야겠구나!

그리고는 다시 소맥에게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요! 부디 죽여주십시오!

이 자는 죽는다는 말을 참으로 좋아하는구나, 하고 소맥은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 한낱 짐승이 무엇을 알고 그랬겠습니까.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가엾고 말 못하는 어린 것을 너무 가혹히 다루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자 또다른 화려현 사람이 말했다. 비록 나이는 어려 보이는 자이나 오색실로 수놓인 검은 비단 곡령曲領을 걸치고 허리띠에는 길다란 은드리개腰佩를 여러 개 달아 높은 직책으로 보였다. 또한 그 말씨 또한 매우 예절이 발랐다.

- 예로부터 읍락을 침범한 자는 소와 말 등의 집짐승으로써 배상하는 것이 도리인 줄 아옵니다. 이번 불미스러운 일은 말 관리를 소홀히 한 저희 쪽에 책임이 있사오니 부디 저희 마을에 와주시어 책화責禍를 받아주십사 청하는 바이옵니다.

이에 소맥이 말했다.

- 산천의 경계 또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임의로 그은 것일 뿐인데, 어찌 망아지 한 마리가 넘어온 것을 가지고서 읍락을 침범했다 이를 수 있겠소? 내 이번 일은 모른체 하고 넘어갈 터이니 걱정 마시구려.
- 그저 넘어간 것 뿐이 아니오라 나무의 과실까지 먹었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공이 지금 들고 계시는 광주리는 분명 이 나무의 과실을 거두려 하심이 아니었사옵니까?
- 말이 먹은 것은 땅에 떨어져 있었던 것 아니오? 어차피 이미 땅에 떨어진 과실은 굳이 줍지 않으니 상관 없소.
- 하오나 혹여라도 이 말이 나무를 걷어차고 들이받아 채 떨어지지도 않은 열매를 일부러 떨어뜨렸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옵니까? 그러하면 공의 재산을 크게 손괴한 것이 아니옵니까? 또한 설령 땅에 떨어진 과실이라 하여도 동이국의 말이 와서 먹을 수도 있었을 것 아니옵니까?

소맥은 바로 대답할 말이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젊은이가 짐짓 간곡한 말투로 말했다.

- 하여 이는 그저 넘어가서는 안 되는 중한 일이오니 부디 와서 책화를 받아주십시오.

그리하여 소맥은 말을 찾으러 온 이들과 함께 화려현에 속한 이웃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의 삼로가 사는 곳은 말을 키우는 곳의 한 가운데에 있다고 했다. 그곳에 가는 길의 양 옆에는 굵은 통나무 울타리로 된 수백 칸의 우리가 줄지어 있었고 그 우리마다 조랑말이 한 마리 씩 들어있었다. 소맥이 젊은 사람에게 삼가 물었다.

- 이곳에는 말이 무척 많은데 다 무엇에 쓰기 위한 것이오?
- 여기 말들은 전부 그 고기를 먹기 위한 것들로 가능한 살이 많이 찌도록 풀을 먹이지 않고 오직 곡식만 먹여 키우고 있습니다. 올해 무천날에는 이 말들을 잡아 그 고기를 화려현후님께 진상할 것입니다.

소맥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 우리 동이현에서는 말은 일을 시키는 짐승인지라 여간해서는 절대 그 고기를 먹지 않소.
- 이곳 화려에서도 그와 같은 연유로 오직 부유한 이들만이 말고기를 먹습니다. 말이란 짐승은 버릴 게 없으니 그 질긴 가죽은 신을 지어 신기 적당하고 말총으로는 체와 발을 만듭니다. 꼬리와 뼈는 고아서 탕을 끓이고 살코기는 불에 굽거나 큰 토막을 내어 술에 찐 뒤 얇게 저며서 냅니다. 심장과 간은 생으로 먹는 게 가장 맛이 좋습니다. 또한 살코기를 염장하고 말려 육포를 만들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염장한 뒤 다진 말고기를 말창자에 채워넣어 훈연한 것이 있는데 이 또한 맛이 좋기로 아주 유명합니다.

소맥 또한 요리에 관심이 많아 그 말에 흥미가 동하면서도, 말을 음식으로 쓴다는 것이나 음식으로만 쓰기 위해 기른다는 것에는 도무지 어색함과 생소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한참 걸은 뒤에 마침내 그들은 삼로의 집에 당도했다. 젊은 화려현 사람이 먼저 들어가 삼로를 문 앞까지 모시고 나왔다. 삼로 또한 온몸에 비단과 금은을 둘러 차림새가 사치스럽기 그지없었다. 소맥은 삼로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 한낱 말치기에게 절이라니 당치 않소. 고개를 드시구려. 아들에게 이야기는 전해 들었소.

아마도 그 젊은이가 이 삼로의 아들이라는 듯하였다. 삼로가 말을 이었다.

- 그 망아지는 길이 잘못 들었소. 아주 가끔가다 그런 말이 한마리씩 나오는데 결국 끝까지 말썽을 일으킨다오. 울타리로 가두면 그 밑의 땅을 파서 도망치고 줄로 매어 놓으면 그 줄을 씹어서 끊고 도망치오. 심지어는 말 한마리가 나무 울타리를 걷어차부수고 같이 있던 말들을 모조리 끌고 나간 경우도 있었소. 그 후로는 모든 말을 한 마리씩 우리에 가두고 절대 말 여러마리를 모아놓고 기르지 않는다오.

소맥이 말했다.

- 저로서는 이 일이 이렇게까지 해야 될 일인지 모르겠사옵니다. 고작 망아지 한마리에 떨어진 돌배 몇 알 아닙니까? 이런 일로 책화를 물음은 당치 않다 생각되옵니다.
- 만일 이것이 같은 마을의 이웃간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오. 허나 이는 두 읍락의 영역과 재산권이 얽힌 문제이니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오. 얼핏 사소해 보이는 일로도 두 읍락 간에 의가 상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그것이 두 현간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 어찌 신중할 일이 아니겠소.

소맥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 외람되오나 혹시 오늘 도망친 망아지도 올해 무천날에 잡기로 되어 있사옵니까?

그러자 삼로가 말했다.

- 그 말은 아직 잡기에는 살이 너무 없고 맛이 들지 않았소. 그러나 필시 그 말은 잡을 때까지 계속 우리를 빠져나가 소란을 일으킬 터이니 그냥 죽이는 것이 상책일 것이오.
- 하오면 저에게 그 말을 파시면 안 되겠사옵니까?
- 돈을 받으면 그게 어디 책화겠소? 게다가 말치기의 도리로 어찌 쓸모없는 물건을 팔 수 있겠소. 부디 가질 것이라면 그냥 가져가시오.

그렇게 책화 문제는 해결되었다. 아까 처음에 봤던 노인이 말에 재갈과 고삐를 매면서 말에게 욕설을 했다.

- 이 죽을 망아지놈! 내 오늘 반드시 네 목을 치려 했거늘 운이 좋아 산 줄 알아라!

그리고는 소맥에게 말고삐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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