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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하소설] 범의 귀 (4)
보낸이:  
코마네치 (lensman)             2013-12-07 00:53:41      조회:385
[대하소설] 범의 귀 (4)

산으로 돌배를 따러 갔던 소맥이 한 손에 말고삐를 쥐고 나타나자 아버지를 맞으러 나온 소모가 자못 궁금해하여 그 연유를 물었다. 그 자초지종을 모두 들은 소모가 말하였다.

- 이같이 귀한 말을 거저 얻게 됨은 분명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오나, 망아지 한 마리가 산을 넘어와 떨어진 열매를 먹었기로 책화를 물다니, 필시 이는 앞으로 화려의 땅을 침범하면 책화를 엄히 부과하겠다는 경고이옵니다. 소자가 듣기에 일개 마을鄕의 삼로三老라는 자와 그 아들의 사치스러운 차림새 또한 수상하기 그지없으며, 그 해괴한 말투를 쓰는 늙은이는 호족에게 고혈을 빨리는 부여국의 하호들을 연상케 하는 바가 적지 않으니 이 어찌 예濊의 근본에 어긋나지 않는다 하겠사옵니까. 또한 제祭에 쓰기 위해 잡으려는 말의 수가 지나치게 많게 느껴지니 이는 곧 화려현이 군사를 모아 이웃 현들을 병합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이에 소맥은 말하였다.

- 필시 네 생각이 지나친 것이다. 하루 종일 경당에 앉아 목간 속의 깨알같은 글자만 들여다 보니 바깥 세상일에 경계심이 많아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니라.

그날 저녁 소맥의 집을 찾은 주객들에 의해 이웃 마을의 책화 이야기가 온 마을에 화제거리가 되었다. 갈노인도 그 소식을 듣고 찾아온 사람 중 한 명이었다.

- 자네가 새 신부를 맞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왔네만 그것이 바로 그 처자인가?
- 어르신도 저희 집 말을 구경하러 오신 것입니까?
- 그것도 있고 겸사겸사 해서 들렀네. 그나저나 갓 태어난 망아지인 줄 알았더니 이 정도면 슬슬 등짐을 지기 시작해도 되겠구먼.
- 이제 강아지 새끼만한 어린 것이 무슨 힘이 있어 등짐을 지겠습니까?
- 일부러라도 어릴 때부터 적게나마 짐을 지게 해야만 큰 뒤에도 짐말로 부릴 수 있을 걸세. 서서히 가벼운 짐부터 들리게나. 흔히 말은 자기 무게의 2할까지 들 수 있다고들 한다네.

언제나 그렇듯 갈노인의 말은 처음 들었을 땐 반신반의하면서도 따지고 보면 이치에 닿는 듯하여 결국 혹하게 되고 마는 것이었다. 소맥은 바로 전에 소모에게 들었던 말을 짐짓 자기 것인양 그대로 옮기며 갈노인의 생각을 삼가 물으니, 갈노인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하며 별로 놀라지 않는 듯했다.

- 그 늙은이는 아마도 다른 마을에서 말을 훔치러 왔다가 붙잡힌 부로俘虜일 걸세. 화려는 지리적으로 옛 조선朝鮮과 가까워 그들의 팔조금법八條禁法을 본받아 따른 것이니, 비록 예맥의 근본에서 벗어난 오랑캐의 법도라 하나 치세에 쓸 수 있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없는 것이네. 또한 화려가 군사를 모으고 있다 한들 우리가 그것을 금할 방도도 없으니 그저 그들에게 꼬투리나 잡히지 않게 주의하는 것이 상책이네. 자네도 산에 올라갈 때 혹 실수로 마을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게나.

소맥이 들으니 과연 일리가 있었다. 갈노인이 각설하고 말했다.

- 혹시 이 집에 쇠힘줄이 있으면 조금 얻을 수 있겠는가? 쇠고기로 술안주를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질긴 힘줄 부위가 많이 남지 않겠는가 말일세.
- 애초에 저희 집에서는 돼지고기와 양고기 이외의 고기는 취급한 적이 없습니다. 그것도 힘줄이나 쓸모없는 비계 부위는 다 걷어낸 것을 육전肉廛에서 삽니다. 헌데 소의 힘줄은 구하여 어디에 쓰시려는 것입니까?
- 그것은 아직 자네에겐 알려줄 수 없네.

그러면서 갈노인은 어린 말에게 다가가 그 갈기를 쓰다듬으며

- 정 그러하면 하는 수 없이 네 힘줄이라도 뽑아 써보자꾸나.

라고 말하고는 소맥이 정색하는 것을 보며 껄껄 웃으며 돌아갔다.

갈노인의 말대로 소맥의 조랑말은 암말이었는데 이웃집의 물개잡이 옹우鰅尤가 이 다음에 말이 크면 교배를 시키지 않겠느냐며 끌고 온 늠름한 숫말을 보고는, 마치 여인이 수줍어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소맥이 말했다.

- 너 또한 암컷이라고 수줍은 기색을 보일 줄을 아는구나. 이제부터 네 이름을 번수煩羞라고 부르마.

그리하여 그 뒤로 번수로 불리게 되었다. 번수에게는 산에서 과실이 열리는 나무를 찾아내는 탁월한 재주가 있었는데 소맥이 생각하기에는 아마도 과실 특유의 냄새로 찾는 듯하였다. 왜냐하면 번수가 과실 나무를 찾을 때는 항상 그 과실이 가장 맛있게 잘 익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소맥은 번수와 함께 산속을 다니며 자신도 몰랐던 곳에 있는 앵두나무와 보리수 나무 몇 그루를 더 찾아내었다. 이는 과실주를 담그는 것이 본업인 소맥에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소맥은 번수가 새 과실 나무를 찾아내는 날에는 항상 온몸의 털을 정성껏 빗겨주고 마음껏 신선한 열매를 먹게 해주었다.

또한 갈노인의 말에 따라 시험 삼아 등짐을 지게 하여보았더니 신통하게도 열근 이하의 무게는 가뿐히 들고 걸어다녔고 특히 흔들리거나 안에서 출렁이지 않도록 잘 고정된 화물은 더 많이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또한 등짐을 지고 아무리 오래 걸어도 절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소맥은 이 또한 기특히 여겨 번수가 무거운 짐을 옮긴 날에는 달착지근한 검은 콩과 푸른 콩을 한 되 가득 삶아 든든히 먹여주었다.

처음엔 번수를 집안 마당에 매어놓았으나 자꾸만 줄을 이빨로 씹어 끊었다. 결국 매어두는 것은 포기하고 낮 동안에는 집 바깥에 풀어놓으니 제가 알아서 멀리 가지도 않고 집 가까이에서만 노닐고 밤에는 잠을 자기 위해 스스로 돌아와 소맥이 짚거적을 등 위에 덮어주면 꼿꼿이 선 채 오직 눈만 감고 잠을 잤다. 이로써 마당에 굴러다니던 배설물을 치울 걱정도 없어져 오히려 더 편하게 되었다.

말을 키우게 되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는 말이 어려서부터 곡식만 먹고 자란 탓에 풀을 먹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별 일 아니라 생각했으나 말이 커 가면서 나날이 갈수록 곳간의 양식이 빠르게 줄어가는 것을 보고 소맥이 한탄했다.

- 말 하나를 먹이기 위해 온 집안 곡식을 거덜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말을 굶길 수도 없으니 대체 이 일을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이를 들은 아들 소모가 냇가에 나가 줄풀의 이삭을 한 움큼 뜯어와 말에게 먹이니 잡초임에도 불구하고 그 풀은 제법 잘 먹는 것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이냐고 묻자 소모가 말하길,

- 소자가 일전에 본 서책에 먼 옛 시대 사람들은 쌀과 기장을 먹기 전 본래 줄풀을 논에 길러 그 씨앗을 곡식으로 먹었다 이르니, 이를 말의 먹이로 시험하여 본 것이옵니다.

라 했다. 소맥은 아들의 덕으로 지천에 널린 곡식을 말 먹이로 얻게 되었으니 과연 글을 가르친 보람이 있다며 몹시 기뻐했다. 또한 그 이후로 번수는 차츰 풀도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줄풀은 한어로 고苽 또는 고 菰라 하며, 오늘날 소나 말 등의 집짐승에게 먹이는 풀을 가리켜 꼴을 베어 먹인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는 줄풀로부터 나온 표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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