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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대하소설] 범의 귀 (5)
보낸이:  
코마네치 (lensman)             2013-12-07 00:54:13      조회:467
[대하소설] 범의 귀 (5)

시월 초아흐렛날, 한 무리의 마을 아이들이 도토리를 따기 위해 산에 갔다가 길가에 죽어있는 여인의 시신을 발견했다. 죽은 여인은 마을의 젊은 과부로 과거 물개잡이였던 남편이 파도에 휩쓸려 간 뒤 홀로 삼베를 팔아 어린 아들딸을 길러오고 있었다. 양친을 차례로 잃고 천애고아가 된 아이들은 갈 곳이 정해질 때까지 당분간 삼로의 집에서 맡아 기르기로 하였다.

발견 당시 시신 곳곳에 짐승에게 물린 흉터와 먹힌 흔적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산짐승들의 털이 여기 저기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냥꾼들에게 시신의 상한 곳을 보여주니 필시 멧돼지에게 공격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현장에서 가져온 털을 보여주니 이번에는 그 털들이 분명 삵과 표범의 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사건의 경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한 시신 옆에는 싸리로 엮은 채반이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는데 그 안팎이 누군가 예리한 것으로 긁고 뜯은 것처럼 망가져 있었다.

한 마을 사람이 제안한 가설은 이랬다. 현장에 흩어져 있는 털은 삵과 표범이 떼를 지어 교미한 흔적이다. 지금은 동물들이 털갈이를 하는 시기이므로 더욱 털이 많이 빠졌을 것이다. 과부 여인이 지나가다가 그 장면을 보고는 그만 도취하여 흥분에 채반을 손톱으로 잡아뜯으며 구경하다 추위에 잠이 들어 동사하였다. 그 후 멧돼지가 와서 시신을 먹었다.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이에 반론하기를, 그 가설로는 시신에 묻은 털을 설명하지 못하며 삵과 표범이 떼를 지어 교미한다는 말은 일찍이 들어보지 못했고 무엇보다도 지금은 겨울을 앞둔 시기로 상식적으로 동물이 교미를 할 때가 아니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사건이 옛 문헌에 나온 충䝑이란 짐승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충은 털은 삵과 같고 주둥이는 멧돼지와 같고 귀는 토끼와 같으며 긴 발톱으로 땅 속에 굴을 파고 들어가 개미와 땅강아지를 먹으며 사는데, 가끔 땅 속에 묻은 사람의 시체를 먹기도 하니 사람을 묻을 때 돌을 넣음은 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평소 성질은 비교적 온순하지만 오랫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하면 땅 위로 나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뭐든지 공격하여 물어뜯는다. 하지만 의심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실제로 충을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떤 문헌에 나와있는지를 묻자 당황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또 다른 사람이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시신과 그 주변에 흩어진 털은 삵과 표범이 먹잇감인 과부 여인을 사이에 두고 다툰 흔적이다. 채반은 여인이 이 짐승들로부터의 공격을 막는 데에 쓰였다. 그러던 중 여인이 힘이 다해서 죽고 두 짐승도 서로 싸우다 지쳤을 때 멧돼지가 뒤늦게 나타나 어부지리를 취하였다. 이 주장 또한 두 사나운 짐승이 싸운 것 치고는 땅에 핏자국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미심쩍은 점은 있었으나 그나마 다른 주장들에 비해서는 상식에 맞았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이쪽으로 결론이 내려지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은 의문이 풀리지 않는 부분이 남아있었으므로 이에 관해서는 모든 사람에게 다른 생각이 있었다.

무천을 앞두고 온 마을이 뒤숭숭한 가운데 소맥에게도 나름의 고민거리가 있었다. 며칠내로 고기를 새로 사오지 않으면 정작 대목인 무천날에 팔 안주가 하나도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맥은 늘 읍내 장터의 육전에 가서 고기를 사왔는데 이번에 여인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 바로 읍내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꺼림칙하고 두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소맥의 집에 모인 주객들마저 과부의 시신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사건 자체가 기묘한 구석이 있기도 하였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죽은 과부가 마을에서 제일 가는 절색으로 크게 소문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중에는 차라리 자기 처가 대신 갔어야 했다고 말하는 인간 말종도 있는가 하면, 산짐승이 사람의 미색을 가릴 줄 아는 것도 아닐진대 과연 사람이 아닌 것의 짓이라는 법이 있느냐며 자못 흉흉한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자기의 가장 절친한 벗의 아는 사람이 충이라는 짐승을 실제로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저 모두에게 비웃음만 살 뿐이었다. 그가 아무도 믿지 않는 충설을 계속 주장하자 아예 그 사람의 별명이 충이 되었다.

그날 주객 중에서 유독 우두커니 앉아서 말을 삼가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맥의 이웃집에 사는 옹우였다. 옹우는 덩치는 크지만 아직 순박한 면이 있는 자로, 죽은 과부의 남편과는 어려서부터 막역지우간이었다. 4년 쯤 전 물개사냥을 나갔다가 큰 파도가 배를 덮쳐 몇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이때 옹우가 바다에 뛰어들어 친구를 구하려 했지만 파도가 거세어 결국 구하지 못해 잃고 말았다. 그 후로 괴로운 마음에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친구의 죽음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꼈으므로 매달 물개가죽을 팔아 돈을 벌면 늘 친구의 부인에게 그 상당량을 떼주어 생활에 보태어 쓰게 했다. 늦은 나이에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걸 생각하면 과부를 연모하는 감정도 아마 조금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고지식한 성정에 차마 그것을 입밖에 내어 말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때 갈노인이 상심 말라는 듯이 옹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하는 것이었다.

- 자네도 다음 생에는 꼭 충으로 태어나게나.

주객들은 모두 갈노인을 가리켜 몹쓸 늙은이라 하며 박장대소했다. 옹우가 말했다.

- 마을 사람이 죽었는데 무엇이 그리들 기쁘십니까? 농들이 지나치지 않습니까?

그러고는 혼자서 집으로 쓸쓸히 돌아갔다. 소맥이 그 모든 광경을 보고 있자니, 사나운 산짐승도 시신도 죽음도 이 술 취한 천치 같은 작자들 앞에는 전부 농지거리감에 지나지 않게 되니, 두렵고 저어하던 기분도 사라지고 그저 세상 만사가 다 하찮고 지긋지긋해지고 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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